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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방의 선물 리뷰: 부성애의 무게, 억울함의 시간, 끝내 도착한 진심

by 안다미로_ 2025. 5. 21.

부성애의 무게

《7번방의 선물》은 가장 순수한 사랑이 가장 잔혹한 현실 속에서 무너지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영화가 다루는 건 단지 '누명'이 아니다. 그 누명 뒤에 놓인 부성애의 형태, 그리고 사회가 약자를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용구(류승룡)는 발달장애를 가진 아버지다. 딸 예승을 세상 무엇보다 사랑하고, 작은 우산 하나에도 큰 감사를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하지만 사회는 그의 순수함을 이해하지 못한다. 오히려 그 순수함을 '의심'으로 보고, 그의 다름을 '위험성'으로 간주한다. 이 영화가 특별한 건, 초반의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도 계속해서 어긋나는 시선을 쌓아간다는 점이다. 예승을 향한 용구의 사랑은 말투 하나, 손짓 하나에서 그대로 드러나지만, 세상은 그 표현을 읽어내지 못한다. 결국, 그는 단 하나의 의심으로 딸과 단절당하고, 세상으로부터 격리된다. 용구가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되는 사건은 그 자체로도 충격적이지만, 그보다 더 비극적인 건 그를 위해 나서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의 말은 신뢰받지 못하고, 그의 행동은 ‘의심’으로만 규정된다. 사랑은 오해로 덮이고, 진실은 침묵으로 묻힌다. 《7번방의 선물》은 이 대목에서 관객의 감정을 끌어올린다. 관객은 용구를 보며 ‘그가 뭘 잘못했는가?’라고 묻는다. 하지만 영화 속 세상은 ‘그가 다르다’는 이유로 이미 결론을 내린다. 그의 부성애는 강요된 것도, 배운 것도 아니다. 그건 그의 전부였고, 그 전부는 이제 철창 너머로 밀려난다. 딸과 떨어진 그는 세상에서 가장 절박한 감정—“아버지로서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감정”을 견뎌야 한다. 이 감정은 관객이 그를 '장애인'이 아닌 '부모'로 보게 만드는 열쇠가 된다. 그는 능력이 부족한 아버지일 수 있지만, 사랑만큼은 어떤 부모보다 절실하다. 영화는 이 부성애를 어떤 고백이나 명대사로 강조하지 않는다. 오히려 말이 부족한 인물을 통해, 행동 하나하나로 감정을 쌓아간다. 밥을 먹이고, 머리를 쓰다듬고, 그리움을 참고, 감옥에서 딸을 다시 만나기 위해 온몸을 바쳐 움직이는 장면들. 이 모든 순간이 부성애라는 감정의 ‘무게’를 관객에게 전한다. 용구는 세상에서 가장 약한 사람처럼 보인다. 하지만 예승 앞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존재다. 그 단단함은 지식이 아닌 사랑에서 나온다. 그리고 그 사랑은 곧 이 영화 전체의 구조를 지탱하는 감정의 기둥이 된다. 《7번방의 선물》은 말이 아닌 감정으로 증명되는 사랑의 이야기다. 그리고 그 감정은, 그 어떤 논리보다 깊고, 그 어떤 설명보다 설득력 있다.

억울함의 시간

《7번방의 선물》의 본격적인 서사는 용구가 수감된 이후부터 시작된다. 이 영화가 특별한 건, 감옥이라는 공간을 단지 형벌의 장소로 그리지 않고, 억울함과 인간성, 연대가 교차하는 감정의 실험실로 바꿔낸다는 점이다. 용구는 죄가 없다. 그러나 그는 법정에서 진실을 말할 수 없다. 제대로 해명할 능력도, 그를 믿어줄 구조도 없다. 그가 가진 유일한 힘은 사랑했고, 사랑하고 있으며, 사랑할 딸이 있다는 것뿐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 사랑마저 의심하고, 그의 감정을 ‘사건의 동기’로 왜곡해버린다. 여기서 영화는 감정을 조작하는 사회의 모습을 조명한다. 언론은 사실보다 자극을 앞세우고, 검찰은 결과를 위해 과정을 포기하며, 법정은 진실보다는 권력에 더 가까이 선다. 이 억울함은 단지 한 개인이 당하는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침묵하면 반복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폭력으로 작동한다. 그러나 영화는 용구를 피해자로만 머물게 두지 않는다. 그는 감옥 안에서도 누구보다 밝고 순수하게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다. 그의 행동은 계산되지 않았고, 그의 말은 언제나 단순하다. 하지만 그 단순함 속에서 동료 죄수들은 ‘이 사람은 악인이 아니다’라는 가장 본질적인 믿음을 얻게 된다. 7번방의 죄수들은 각자 사연을 안고 있다. 폭력범, 사기꾼, 뒷골목 인생들. 그러나 그들조차 용구에게서 죄의 냄새를 맡지 못한다. 오히려 그와 함께 있으면서 인간의 본성,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기를 되찾게 된다. 감옥은 차갑고 어두운 공간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속에서 피어난 정은 진짜 세상보다 훨씬 따뜻하고, 정직하다. 영화가 특히 감정적으로 고조되는 지점은 예승이 몰래 감옥에 들어와 아버지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장면들이다. 이 불가능한 상황은 처음에는 유머로 포장되지만, 점점 관객에게 묵직한 감정을 안긴다. “함께 있는 시간이 많을수록, 곧 다가올 이별이 더 무거워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7번방의 선물》은 억울함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단지 분노로 풀지 않는다. 오히려 그 억울함 속에서도 사람들은 서로를 돕고, 웃고, 믿는다. 그 믿음은 논리가 아니라 감정의 작용이다. 세상은 진실을 외면하지만, 감옥이라는 작은 사회는 오히려 그 진실을 직감으로 알아본다. 이 영화는 그래서 더 슬프다. 밖은 차갑고, 안은 따뜻하다. 그 구조가 뒤바뀌었기에, 관객은 더 깊은 억울함을 느낀다. 용구는 죄인이 아니다. 그러나 그는 ‘죄인’으로 남는다. 그의 시간은 무고함이 증명되지 않는 한, 계속해서 고통과 침묵 속에서 흘러간다. 《7번방의 선물》은 묻는다. “정의란 무엇인가?” 그리고 조용히, “그 질문을 너무 늦게 던지는 우리는, 어쩌면 모두 공범인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끝내 도착한 진심

《7번방의 선물》의 감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선명해진다. 처음엔 웃음이었고, 이내 억울함이 되었으며, 결국엔 눈물로 터져 나온다. 그리고 이 모든 감정은 마지막 장면에서 ‘진심의 도달’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용구는 결국 사형당한다.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고, 정의는 외면당했다. 하지만 영화는 그 죽음 이후를 멈추지 않는다. 시간이 흐른 뒤, 예승은 성인이 되어 아버지를 위한 재심을 청구한다. 이 장면은 단순한 반전이 아니다. 이건 사랑의 지속성에 대한 증명이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억울함은 지워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억울함을 기억하는 사람, 그 기억을 행동으로 옮긴 사람은 다름 아닌 예승이다. 예승의 모습은 영화의 정서를 뒤바꾼다. 아이였던 그녀가 어른이 되어 법정에서 진술하는 순간, 관객은 ‘이야기의 무게’가 단순한 감정 소비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건 기억이고, 기록이며, 사랑이 남긴 유산이다. 그녀는 말한다. “우리 아빠는 죄가 없습니다.” 이 한 문장은 오래 기다려온 진실의 말이며, 관객 모두가 마음속으로 대신 외쳤던 문장이기도 하다. 그리고 마침내, 법정은 그 진심을 듣는다. 《7번방의 선물》은 ‘사람의 감정이 얼마나 오랜 시간 끝까지 남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그 답은 진심은 언젠가 도착한다는 믿음 속에 담겨 있다. 비록 늦었고, 돌아올 수는 없지만, 그 진심은 사람을 움직이고, 세상을 조금씩 바꾸며, 누군가를 구제한다. 영화는 마지막에 눈물을 강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모든 감정을 다 흘린 관객에게 잔잔한 감정의 여운을 남긴다. 용구의 죽음은 부당했지만, 그의 사랑은 실패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사랑은 예승이라는 이름으로 끝내 도착했기 때문이다. 《7번방의 선물》은 결국 한 사람의 고통이 많은 사람의 공감으로 바뀌는 이야기다. 그 공감은 법을 바꾸고, 제도를 흔들며, 사람의 마음에 정의가 있다는 사실을 다시 일깨운다. 진심은 가끔 늦게 도착하지만, 도착하지 않는 법은 없다. 그리고 그것이 이 영화가 남긴 가장 묵직한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