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 : 역사 속 상처
이 작품은 단순한 영화가 아니다. 그것은 아직 끝나지 않은 한국 현대사의 상처를 들춰내는 강렬한 기록이며, 동시에 억눌린 정의를 향한 집단의 목소리다. 이 작품은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벌어진 학살과 그로부터 정확히 26년 후인 2006년, 그 피해자들과 유족들이 주축이 되어 가해자에게 응징을 시도하는 과정을 다룬다. 영화의 서사는 복수극의 구조를 따르지만, 그 복수는 단순한 감정의 표출이 아니라 집단적 정의 실현이라는 사회적 무게를 안고 있다. 1980년 광주는 단지 과거의 사건이 아닌 현재의 고통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그 상처는 개인의 삶 속에서, 가정의 해체 속에서, 잊힌 진실 속에서 여전히 흐르고 있다. 이 영화는 이 상처를 다각도로 보여준다. 교통경찰, 스나이퍼, 보디가드, 기업인 등 다양한 계층의 인물들이 등장하고, 그들의 과거는 각기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광주’라는 단어 아래 연결된다. 이 연결은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집단적 트라우마의 형상화이며,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영화는 각 인물들의 일상과 과거를 교차로 보여주며, 그들이 복수를 결심하기까지의 내면적 갈등을 촘촘히 그려낸다. 단순히 피해자이기 때문에 복수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정의를 회피하고 침묵한 데 대한 분노가 그들의 동기를 더 강하게 만든다. 이 작품의 힘은 바로 그 지점에서 비롯된다. 해당 작품은 국가폭력의 피해자가 주체가 되어 다시 자신의 삶을 정의하려는 과정을 섬세하게 조명한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진상은 규명되지 않았고 책임자는 처벌받지 않았다. 그 공백이 만들어낸 불신과 분노는 주인공들 개개인의 삶을 통해 설득력 있게 드러난다. 특히 영화는 이 복수의 여정이 개인의 감정만으로 이뤄지지 않음을 강조한다. 조직적 준비, 철저한 계획, 그리고 무엇보다도 ‘왜 지금인가’라는 시대적 질문에 대한 답변이 모두 담겨 있다. 26년이라는 시간은 단지 숫자가 아니다. 그것은 세월이 아니라 망각과 침묵의 길고 깊은 무게이며, 피해자들이 견뎌온 고통의 단위다. 이 영화는 그 시간을 관객에게 체험시키고, 다시금 묻게 한다. “우리는 정말 이 사건을 기억하고 있는가?” 영화는 폭력의 재현이 아니라, 기억의 환기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 해당 이야기 불편함을 감수하고라도, 반드시 기억해야 할 과거를 지금 이 시점에서 꺼내 든다. 그리고 그 상처가 단지 과거에 머물지 않도록,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함께 직면해야 할 문제로 제시한다. 이 이야기의 시작은 그만큼 묵직하다. 이는 단지 복수의 서막이 아니라, 아직 봉합되지 않은 상처를 들춰냄으로써 정의와 기억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선언이다.
선택된 복수
이 영화는 복수를 이야기하지만, 그 복수는 우연이나 충동의 결과가 아니다. 그것은 신중하게, 집요하게, 그리고 필연적으로 선택된 행위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각자의 삶 속에서 광주의 그림자를 끌어안고 살아왔고, 26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 분노가 폭발할 환경과 명분, 그리고 용기를 얻게 된다. 이 복수는 개인의 감정적 분노를 넘어서 사회적 정의 실현이라는 거대한 메시지를 동반한다. 극 중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다. 스나이퍼, 경찰, 기업가, 보디가드 등 사회 구성원으로 기능하고 있지만, 그들 내면에는 ‘왜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가’라는 질문이 도사리고 있다. 이들은 복수를 ‘선택’한다. 단지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하나의 미션처럼 철저히 준비하며, 그 준비의 과정에서 수많은 도덕적·윤리적 갈등에 부딪힌다. 이 지점에서 해당 작품은 복수라는 소재를 가장 윤리적으로 다루는 영화 중 하나가 된다. 영화는 말한다. “그들은 왜 복수를 택했는가?”라는 질문보다, “이 사회는 왜 그들이 복수를 택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정의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사회, 책임지지 않는 권력, 침묵으로 일관하는 구조 속에서 복수는 선택이 아니라 마지막 남은 정의의 통로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이 선택은 매우 냉정하다. 감정에만 의존하지 않고, 치밀하게 계획하며, 그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신뢰와 의심이 교차한다. 인물들은 누구보다 고통스러운 결정을 내리고, 그로 인해 자신이 잃을 수 있는 모든 것을 각오한다. 복수는 이들에게 쾌감이 아니라 짐이고, 부담이며, 심지어는 또 다른 상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 복수를 실행한다. 영화는 이 행위가 얼마나 절박하고 비극적인 선택인지를 드러내며, 관객으로 하여금 단순한 응원을 넘어 복수의 배경과 결과를 함께 생각하게 만든다. 특히 이 복수의 설계자는 그저 무모한 인물이 아니다. 그는 26년이라는 시간을 오롯이 견디며, 그 모든 과정을 통해 역사의 왜곡과 침묵에 대한 분노를 결집시킨 인물이다. 그가 준비한 것은 총과 계획만이 아니라, 하나의 메시지다. 사회는 여전히 과거를 덮으려 하고, 피해자는 여전히 침묵을 강요당하고 있다. 복수는 그 침묵을 깬다.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는 선언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 복수의 계획이 실행될수록, 영화는 점점 긴박감과 도덕적 압박을 더해간다. 관객은 ‘과연 이들이 쏠 것인가’라는 긴장감 속에서, 이 행위가 정당한가에 대한 질문과 맞닥뜨리게 된다. 영화는 그 답을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선택의 과정을 따라가며, 정의란 무엇이며, 복수가 정의의 도구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해 스스로 판단하게 만든다. 결국 이 작품의 복수는 폭력이 아닌 저항이다. 권력에 눌려 살아온 자들이 선택할 수밖에 없던 마지막 방법이고, 그것은 단지 한 사람을 벌주는 것이 아니라, 역사 앞에 질문을 던지는 방식이다. 이들은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모인 것이 아니라, 왜 이토록 오래 기다려야 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모였다. 복수는 이 영화에서 상징이고, 그 상징은 아주 무겁고도 절실하다. 이 선택은 단순한 정의감의 분출이 아니라, 억눌린 이들의 절규이며, 역사와 사회에 대한 질문이며, 기억의 총성이기도 하다.
정의의 얼굴
이 스토리는 마지막 순간까지 관객에게 묻는다. “정의란 무엇인가?” 그리고 그 정의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가.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자신이 옳다고 믿는 정의를 향해 나아간다. 그러나 그 정의는 누구에게는 구원일 수 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또 다른 폭력일 수도 있다. 결국 이 영화는 정의의 ‘형태’가 아니라, 정의의 ‘가능성’에 대해 묻는다. 실제로 극 중 복수 실행을 앞두고 등장인물들은 갈등한다. 정의라는 이름으로 행하려는 이 행위가 과연 정당한가, 이로 인해 또 다른 희생자가 생기진 않을까, 그리고 진짜 책임자는 이 한 명뿐인가. 정의는 단일하지 않다. 오히려 모순을 품고 있다. 가해자는 늙었고, 힘도 권력도 이미 예전 같지 않다. 그러나 그가 행한 죄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고, 그 죄로 인해 누군가는 아직도 고통받고 있다. 정의는 시간이 지났다고 해서 퇴색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정의를 말할 수 있는 순간은 언제인가. 영화 26년은 이 질문에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다만 선택할 수 있는 여러 얼굴을 보여준다. 누군가는 복수를 통해 정의를 이뤄야 한다고 믿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것이 또 다른 상처를 만든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그런 다층적 시선을 존중한다. 실제 역사 속에서 이뤄지지 않았던 정의의 실현을 영화라는 가상공간에서라도 그려보는 일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그것이 잊히지 않도록 하는 최소한의 몸부림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 영화가 가지는 특별한 힘은 바로 ‘현실성’에 있다. 이 이야기의 모든 설정은 현실 속 인물과 사건을 연상시키고, 관객은 그 현실을 알고 있기에 더 큰 긴장감과 감정의 동요를 느낀다. 우리가 진짜로 보고 싶었던 정의의 얼굴은 무엇이었는가. 이 질문은 영화가 끝난 후에도 관객의 마음에 오래 남는다. 주인공들의 선택은 각기 다르다. 어떤 이는 총을 들고, 어떤 이는 돌아선다. 그 모든 선택은 옳거나 그름의 문제라기보다, 인간으로서 감당할 수 있는 정의의 무게에 대한 고민이다. 이 작품은 그 고민 자체를 보여준다. 정의는 이상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선택되고, 실현되며, 때론 실패하고, 때론 왜곡된다. 그렇기에 그 얼굴은 일그러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정의를 외쳐야 하고, 찾으려 애써야 하며, 그것이 존재할 수 있도록 계속 질문해야 한다. 이 영화는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이며, 기억을 이어가는 방식이라고 말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들의 눈빛은 두려움과 확신, 고통과 해방이 동시에 담겨 있다. 바로 그것이 정의의 얼굴이다. 완벽하지 않지만 포기하지 않는, 아프지만 끝내 외면하지 않는 얼굴이다. 해당 이야기는 그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 보게 만든다. 그리고 관객은 그 얼굴을 통해, 지금 우리 사회가 진정한 정의를 얼마나 고민하고 있는지를 되돌아보게 된다. 이 영화는 과거의 사건을 다루지만, 그 물음은 철저히 현재적이다. 우리는 지금, 정의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정의는 과연 누구의 얼굴을 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