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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 미 바이 유어 네임: 감정의 시간, 시선의 계절, 끝나지 않은 여름

by 안다미로_ 2025. 5. 18.

콜 미 바이 유어네임 썸네일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 감정의 시간

영화는 사랑에 대한 영화지만, 그보다 더 정확히는 사랑이 감정을 어떻게 구성하고, 시간 속에서 어떻게 흔들리는가를 보여주는 영화다. 이 영화는 단순한 관계의 시작과 끝을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감정이 어떻게 태어나고, 피어오르고, 결국 남게 되는가를 따라간다. 그 과정에서 시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감정을 구성하는 주체가 된다. 엘리오와 올리버가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영화는 그 감정의 ‘속도’와 ‘리듬’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처음엔 거리를 두고, 눈길을 피하며, 상대의 일상을 관찰한다. 사랑은 이 영화에서 말로 시작되지 않는다. 오히려 침묵, 시선, 걷는 속도, 피아노를 치는 손가락의 리듬에서 조금씩 태어난다. 이 감정은 강렬하거나 갑작스럽지 않다. 마치 여름 햇살처럼, 서서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퍼져간다. 시간의 개념은 영화 전반에 걸쳐 느리게 흐른다. 클로즈업보다는 풍경 속 인물 배치, 빠른 편집보다는 정적인 롱테이크를 통해, 감독 루카 구아다니노는 감정의 시간은 현실의 시간과 다르다는 것을 강조한다. 여름의 계절은 멈춰 있는 듯 반복되고, 두 인물의 감정도 과거와 미래보다는 ‘지금 여기’에만 머무른다. 그 ‘지금’이야말로 가장 찬란하고, 동시에 가장 아픈 시간이다. 이 영화가 특별한 이유는, 사랑이 시작되는 과정을 무언가의 극적인 계기로 설명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왜 좋아하게 되었는가’라는 질문은 필요 없다. 이 감정은 논리나 계기가 아니라, 단지 존재로부터 발생한다. 올리버가 손을 올리는 방식, 엘리오가 그 손을 보며 표정을 바꾸는 순간들—그 순간들은 모두 감정의 출발점이며, 이 영화가 추구하는 시간의 언어다. 또한 작품은 시간이 감정을 증폭시키는 방식을 보여준다. 감정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명확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혼란스럽고 모호해진다. 올리버가 잠시 떠난 뒤, 엘리오의 일상이 흔들리는 과정은 단지 그가 누군가를 잃었기 때문이 아니라, 감정의 ‘위치’를 잃었기 때문이다. 감정은 오브젝트를 상실하면서도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그 부재 속에서 더 선명해진다. 감정의 시간은 영화 후반부, 아버지의 대사에서 결정적으로 드러난다. “슬퍼하지 않는다면, 사랑한 적도 없는 거다.” 이 말은 이 영화가 전하려는 핵심이다. 감정은 완성이나 결말보다도, 그 시간 동안 얼마나 진실했는가에 의해 가치가 결정된다. 그리고 그 시간을 기억하는 방식이, 사랑을 영원하게 만든다.

시선의 계절

해당 이야기는 사랑을 말하면서도, 그 사랑을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대신 이 영화는 시선으로 말하고, 계절로 감정을 표현하며, 공간의 색과 빛으로 내면을 그려낸다. 사랑의 감정이 드러나는 방식은 대사가 아닌, 시선과 분위기 속에서 은밀하게 흐른다. 그래서 이 영화는 감정보다 먼저 시선을, 사건보다 먼저 풍경을 보여준다. 엘리오와 올리버의 감정은 시선의 교차 속에서 피어난다.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되, 그 시선은 결코 정면으로 닿지 않는다. 살짝 비켜간 눈빛, 거울 속 엿보는 시선, 수영장 너머로 건너가는 눈 맞춤은 사랑이라는 감정이 어떻게 ‘응시’를 통해 드러나는지를 말한다. 이 응시는 단순한 관심이 아니라, 존재에 대한 인식이다. 그리고 이 시선의 쌓임이 곧 관계의 밀도를 결정한다. 이 영화는 감정을 계절과 함께 묘사한다. 여름의 뜨거움, 나른함, 반복되는 낮의 일상, 해질 무렵의 그림자는 감정의 리듬과 유사하다. 여름은 정지된 계절이다. 그 속에서 두 사람의 감정도 정지된 듯, 혹은 영원한 듯 이어진다. 그러나 여름은 결국 끝난다. 감정의 절정은 결국 변화하는 계절 앞에서 무력해진다. 이 구조는 사랑의 찬란함과 동시에 유한함을 각인시킨다. 색채 또한 감정의 온도를 드러낸다. 엘리오의 방 안은 흐릿한 파스텔톤, 올리버의 셔츠는 푸른빛과 살구빛이 반복된다. 이 색들은 계절의 빛을 닮았고, 감정의 파장을 닮았다. 카메라는 종종 이 색들을 인물의 표정보다 먼저 담는다. 이는 인물의 감정을 설명하지 않고, 보게 만드는 방식이다. 감독 루카 구아다니노는 감정을 말로 전달하지 않고, 시각 언어로 제시한다. 또한 공간은 인물의 감정을 반영한다. 광활한 들판, 여름 햇살 가득한 집의 정원, 자전거로 달리는 골목길은 두 사람의 감정이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동시에, 이 공간들은 열려 있으면서도 어딘가 닫혀 있다. 감정은 퍼져가지만, 그 감정이 완전히 도달하지 못할 것 같은 공기감이 있다. 그것은 곧 사랑의 불확실성과 닮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영화는 말하지 못한 감정의 압력을 시선과 계절로 보여준다. 무언가 말해야 할 것 같은 순간에도, 그들은 침묵하거나 돌아선다. 그러나 그 침묵의 무게는 말보다 크다. 사랑을 직선적으로 표현하지 않기에, 그들의 감정은 오히려 더 커진다. 그리고 관객은 그 여백 속에서 더 많은 감정을 읽게 된다. 이 작품의 사랑은 완성되지 않는다. 그 대신, 시선의 흔적과 계절의 냄새로 오래도록 남는다. 우리가 여름 냄새를 맡으면 어떤 감정을 떠올리는 것처럼, 이 영화는 한 계절을 감정으로 설계해 둔다. 그래서 이 사랑은 지나가지만, 사라지지 않는다. 시선과 계절은 결국 그들을 기억하게 만드는 가장 정교한 장치다.

끝나지 않은 여름

해당 영화의 마지막은 대단히 조용하고, 압도적으로 아프다. 시간이 흘렀고, 계절은 바뀌었으며, 사람도 떠났다. 그러나 감정은 여전히 머물러 있다. 이 영화는 ‘사랑이 끝났는가’보다 더 깊은 질문을 던진다. 사랑은 사라졌지만, 그 감정의 여운은 얼마나 오래 남는가. 시간이 흘러 크리스마스를 맞이한 엘리오는 벽난로 앞에 앉아 있다. 올리버와의 전화 통화를 끝낸 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있는다’. 표정은 무너지지 않지만, 눈은 울고 있고, 조명은 따뜻하지만 공기는 차갑다. 이 장면은 관객에게 어떤 설명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이 여름은 엘리오에게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이 마지막 시퀀스는 영화 전체의 감정을 압축한다. 여름은 끝났고, 올리버는 떠났고, 감정은 완성되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이 사랑의 진짜 형태다. 완성되지 않았기에 더 오래 남고, 끝나지 않았기에 더 진하다. 감정은 종종 지나간 후에 더 크게 다가온다. 영화 속 엘리오의 사랑은 현실에선 끝났지만, 기억에선 계속된다. 그 기억은 음악으로, 색으로, 공간으로, 계절로 남는다.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엘리오의 눈빛과 조명 하나로 감정의 층을 그려낸다. 설명 없는 장면에서 관객은 스스로 자신의 첫사랑, 자신의 상실을 끄집어낸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관객이 ‘기억하는 방식’에 대한 메타포이기도 하다. 누구나 하나쯤은 잊지 못하는 계절이 있고, 말하지 못한 이름이 있다. 그 이름을 입안에서 반복하며, 그 사람을 잠시 다시 불러본다. 그 행위는 과거를 되살리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도 여전히 그 감정이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일이다. “Call me by your name, and I’ll call you by mine.” 서로를 자기 자신처럼 부르는 이 말은 단순한 로맨틱한 대사가 아니라, 사랑이 두 개의 정체성을 하나로 통합시키는 순간을 뜻한다. 영화는 그 순간이 영원히 이어지지 않음을 알지만, 그 짧은 시간의 충만함이 인생에 얼마나 큰 흔적을 남기는지를 보여준다. 그래서 이 영화는 이별이 아닌 여운으로 끝난다. 감정은 완성되지 않았고, 관계는 이어지지 않았지만, 그 모든 시간이 아름다웠다는 사실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관객은 마지막 장면을 통해, 자신의 끝나지 않은 여름을 조용히 꺼내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