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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봄: 권력의 반격, 침묵의 증언, 무너진 질서

by 안다미로_ 2025. 5. 19.

서울의 봄 썸네일

서울의 봄 : 권력의 반격

이 작품은 단순한 시대극이 아니다. 이 영화는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구성되었지만, 극 중 펼쳐지는 인물 간 대립과 권력 구조의 역동성은 지금 이 순간에도 되풀이될 수 있는 ‘권력의 본질’을 꿰뚫는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의 피격 이후, 정치적 공백 속에서 벌어진 12·12 군사반란은 사실상 대한민국 헌정질서를 무너뜨리는 중대한 쿠데타였다. 영화는 그날 밤과 다음날 새벽까지 벌어진 단 하루의 사건을 집요하게 압축하고, 그 안에서 누가 주도권을 쥐고, 누가 무너지는지를 정밀하게 그려낸다. 중심에 선 인물은 전두광(실제 전두환을 모델로 한 캐릭터)과 그를 저지하려는 정권 내 일부 인사들이다. 전두광은 보안사령관이라는 제한된 직위로 시작하지만, 기습 체포, 언론 통제, 병력 동원이라는 수단을 순차적으로 집행하며 권력 중심부를 빠르게 장악해 나간다. 그의 움직임은 계산되어 있으면서도 파괴적이며, 모든 합리와 질서 위에 군사력이라는 최후 수단을 올려놓는다. 이 영화의 뛰어난 점은, 그 권력 찬탈 과정이 영웅주의나 악역화에 치우치지 않고, ‘어떻게 반격이 가능했는가’라는 메커니즘 자체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대본은 날카롭게 구성되어 있고, 각 장면은 문장 하나, 시선 하나로 군 내부의 공기와 긴장을 완성해 낸다. 특히 전두광이 부하들과 회의를 하며 “누가 지금 나라를 이끌 자격이 있느냐”라고 말하는 장면은 그가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내적 논리를 드러내는 동시에, 한국 정치사에서 반복되는 ‘비상’과 ‘구국’의 수사를 경계하게 만든다. 이 반격은 단순한 쿠데타가 아니다. 그것은 ‘상식’과 ‘권위’를 공격하고, ‘법’과 ‘헌정’을 밀어내는 무력시위이며, 결국 권력이란 무엇으로 유지되고, 어떻게 탈취되는지를 보여주는 냉혹한 해부도다. 그 어떤 법치주의도, 시민의 의사도, 조직 내 기동성과 사적 연대 앞에서는 너무나도 쉽게 밀려난다. 영화가 그리는 권력은 피도 눈물도 없다. 그리고 그 반격은 설득이 아니라 ‘기정사실화’로 완성된다. “이미 벌어졌으니 받아들이라”는 방식의 현실 정치는 결국 관객에게도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이 반격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었겠는가? 혹은, 지금의 우리는 같은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침묵의 증언

해당 작품은 말보다 눈빛이 많은 영화다. 이 영화에서 가장 무거운 언어는 발화되지 않은 말들이다. 총칼보다 날카로운 긴장감은, 침묵 속에서 발생한다. 그 침묵은 단순한 연출 기법이 아니라, 어떤 말도 무력화된 상황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저항이자 증언이다. 반란군을 막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장군, 상부의 명령을 받고도 정지된 채 무기력하게 서 있는 장교, 무전을 들고도 한 마디 말없이 주저하는 사병—이들은 누구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그것을 말할 수 없는 현실의 구조 속에 갇혀 있다. 특히 극 중 한 인물은 체포당하기 직전, “지금 당신들 뭐 하는지 아나”라고 말한 뒤 더는 말을 잇지 않는다. 그 침묵은 두려움 때문이 아니다. 어떤 말도 그 순간의 불법을 덜어낼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장면은 매우 짧지만, 영화의 핵심 감정이 여기에 압축돼 있다. 즉, 영화는 말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더 큰 진실을 드러내는 ‘침묵의 시네마’다. 카메라는 절제된 거리에서 인물을 바라본다. 감정적 클로즈업을 피하고, 오히려 공간과 인물 사이에 공기를 머금은 장면을 자주 보여준다. 그 거리감은 관객으로 하여금 ‘말하지 않는 자의 내면을 추측하고 상상하게 만든다.’ 이 상상은 단지 영화적 기법을 넘어 “우리는 누구의 말에 귀 기울이고, 누구의 침묵을 지나쳤는가”라는 역사적 질문으로 이어진다. 또한, 이 영화에서 ‘침묵’은 권력자들의 무책임과도 대비된다. 반란을 일으킨 자들은 책임 앞에서 침묵하며 오히려 그 자리에 권위를 세우려 한다. 하지만 실제로 가장 중요한 목소리는 총부리를 맞대고도 명령을 거부했던 그 소수의 병사들, 계엄령을 명분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려 했던 장교들의 짧은 숨과 주저함 속에 있다. 이 영화는 관객에게 묻는다. “그날 말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표정, 눈빛, 손 떨림—우리는 그걸 기억하고 있는가?” 그 침묵은 당시로서는 기록되지 못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가장 정확한 진술로 남는다. 그것이 바로 영화가 전하는 ‘증언’이다. 말하지 않았기에 잊히지 않았고, 말할 수 없었기에 더 오래 남아 있다. 해당 이야기는 그런 침묵이야말로 이후 세대가 반드시 읽어내야 할 살아 있는 문장이자, 지워지지 않는 역사라고 말하고 있다.

무너진 질서

이 영화가 끝을 향해 갈수록 관객은 하나의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질서는 언제, 어떻게 무너지는가?” 그리고 더 나아가, “그 무너진 자리에 누가 서 있었는가?” 12·12 군사반란은 단순한 하루짜리 사건이 아니다. 그날 무너진 것은 건물이나 기록이 아니라, 사람들의 믿음과 법치의 기본 구조였다. 해당 작품은 이 무너짐을 과장 없이, 그러나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재현해 낸다. 전투 장면보다, 명령이 교차되고 부서지는 장면에서 더 강한 폭발음이 들린다. 영화는 계엄사령부와 국방부, 보안사령부 사이를 오가며 혼란과 침묵, 방관과 저항이 뒤섞인 정치의 풍경을 펼쳐낸다. 그 속에서 가장 뼈아픈 장면은 “질서를 지키기 위해 침묵하는 자들이 결국 질서의 붕괴에 가장 깊숙이 가담하게 되는” 역설이다. 질서는 외형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복장, 계급, 직책이 질서를 보장해주지 않는다. 영화는 철모를 쓴 병사가 상관의 명령을 거부하고, 별을 단 장군이 총을 들이대며 위협하는 장면을 통해 질서가 곧 행동의 누적과 윤리의 선택 위에만 존재함을 보여준다. 해당 이야기는 이 무너진 질서를 목격한 뒤에도 그 끝을 절망이 아닌 기억으로 남기려 한다. 사건 이후의 장면들, 즉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아침이 밝고 사람들이 일상으로 돌아가는 모습은 가장 차가운 엔딩이자, 가장 현실적인 경고다. “모든 질서는 언제든 다시 무너질 수 있다. 단지 우리가 모른 척하고 지나간다면.” 그리고 영화는 조용히 하나의 메시지를 남긴다. 질서는 제도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제도 안에 있는 ‘개인의 양심’과 ‘선택의 용기’가 만들어낸다. 무너진 질서를 다시 세우는 건, 그날을 기억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영화는 말한다. 우리는 어제를 기록함으로써 오늘을 지키고, 오늘을 응시함으로써 내일을 바꿀 수 있다고. 그리고 그 기록 속엔 반드시 그날 밤, 침묵 속에서 움직였던 사람들의 얼굴과 눈빛이 남아 있어야 한다. 서울의 봄을 보고 나니 우리가 알고 있는 제5 공화국이라는 드라마가 생각이 났는데, 꽤 길기도 하고 언젠가는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역사를 기반으로 한 작품들이다 보니 씁쓸한 내용인 것은 사실이지만 꼭  알아야 하는 사실임에는 변함이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