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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라: 이집트의 파라오, 리버풀의 전설, 그리고 시대의 영웅

by andamiroo 2025. 8. 11.

살라 사진

나일강 유역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전 세계 축구 팬들의 심장을 뛰게 만든 이름, 모하메드 살라. 그는 단순히 뛰어난 축구선수를 넘어, 9천만 이집트 국민들에게 희망과 자부심을 안겨준 시대의 영웅입니다. 첼시에서의 실패를 딛고 리버풀의 전설로 거듭난 그의 이야기는 한 편의 드라마와 같습니다. 이 글에서는 이집트의 '파라오'로 불리는 살라의 어린 시절부터 리버풀에서의 전설적인 기록, 그리고 축구계 안팎으로 펼쳐지는 그의 거대한 영향력까지 깊이 있게 조명합니다.

이집트의 어린 시절과 축구 인생

모하메드 살라는 1992년 6월 15일, 이집트 가르비야주의 작은 마을 나그리그에서 네 자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어린 시절은 결코 풍족하지 않았지만, 축구에 대한 열정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습니다. 살라는 12세에 고향 마을의 작은 클럽에서 축구를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수도 카이로에 있는 '알 모카울룬' 유소년 팀에 스카우트됩니다. 나그리그에서 카이로까지는 무려 150km가 넘는 거리였고, 살라는 매일 5시간이 넘는 거리를 기차와 버스를 번갈아 타며 통학했습니다. 새벽에 집을 나서서 학교에 잠깐 들렀다가 바로 훈련장으로 향하는 고된 일상을 4년 동안 반복했습니다. 이러한 인고의 시간 속에서 살라의 재능은 빛을 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10대 후반부터 뛰어난 스피드와 드리블 능력으로 주목받았고, 2010년에는 1군 팀에 데뷔하며 프로 선수로서의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이집트 리그에서 3년간 11골을 기록하며 팀의 핵심 선수로 성장한 그는 마침내 유럽 스카우터들의 눈에 들게 됩니다.

2012년, 살라는 스위스 명문 클럽 FC 바젤로 이적하며 꿈에 그리던 유럽 무대를 밟았습니다. 바젤에서의 두 시즌 동안 그는 스위스 슈퍼 리그 우승을 경험했고, UEFA 챔피언스리그와 유로파리그에서도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며 자신의 기량을 증명했습니다. 특히 2013-14 시즌, 챔피언스리그 조별 예선에서 첼시를 상대로 두 번 모두 득점을 기록하며 빅클럽들의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그의 빠른 스피드와 날카로운 돌파는 첼시 수비진을 연이어 흔들었고, 결국 당시 첼시 감독이었던 조세 무리뉴의 영입 리스트에 오르게 됩니다. 2014년 1월, 살라는 마침내 첼시로 이적하며 프리미어리그에 입성했지만, 그의 첼시 생활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쟁쟁한 주전 경쟁에 밀려 벤치를 지키는 날이 많았고, 19경기 출전에 2골만을 기록하며 자신의 기량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결국 살라는 2015년 이탈리아 세리에 A의 피오렌티나와 AS 로마로 임대 이적을 떠나게 됩니다. 첼시에서의 실패는 그에게 큰 좌절이었지만, 이는 오히려 살라가 진정한 에이스로 성장하는 중요한 발판이 되었습니다. 이탈리아 무대에서 그는 꾸준한 출전 기회를 얻으며 득점력과 경기 운영 능력을 끌어올렸고, 특히 로마에서는 2016-17 시즌에 19골 12 도움을 기록하며 팀의 에이스로 완벽하게 자리 잡았습니다. 이탈리아에서의 성공은 그가 프리미어리그에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자신감을 심어주었고, 그의 진가를 알아본 리버풀의 러브콜을 받게 됩니다.

리버풀에서의 전설적인 시대와 위대한 기록들

2017년 여름, 모하메드 살라는 당시 리버풀 역대 최고 이적료인 4,200만 유로(약 534억 원)를 기록하며 리버풀 FC에 입단했습니다. 첼시에서의 실패 이후 프리미어리그로 돌아온 살라를 향해 많은 팬들은 우려의 시선을 보냈지만, 그는 이 모든 의구심을 단 한 시즌 만에 완벽히 불식시켰습니다. 2017-18 시즌, 살라는 리그에서 32골을 폭발시키며 프리미어리그 단일 시즌 최다 득점 기록을 경신했고, 잉글랜드 축구 최고의 선수에게 주어지는 PFA 올해의 선수상과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선수상을 휩쓸었습니다. 이는 그가 리버풀에 오자마자 팀의 에이스로 우뚝 섰음을 증명하는 사건이었습니다. 살라는 압도적인 스피드와 드리블 능력, 그리고 왼발 슈팅으로 상대 수비진을 무력화시켰습니다. 특히 측면에서 중앙으로 파고들어 골을 만들어내는 그의 '인사이드 포워드' 스타일은 리버풀의 전술에 완벽하게 녹아들었습니다. 마네, 피르미누와 함께 이른바 '마누라 라인'을 형성하며 리버풀의 공격을 이끌었고, 리버풀은 2018-19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이라는 꿈을 이루게 됩니다.

살라는 2018-19 시즌 리그 득점왕을 차지하며 2년 연속 골든 부트(득점왕)를 수상했고, 다음 시즌에는 무려 30년 만에 리버풀에 프리미어리그 우승컵을 안겼습니다. 그는 리버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2021-22 시즌에는 리그 득점왕과 도움왕을 동시에 석권하며 최고의 활약을 펼쳤고, 리버풀 소속으로 FA컵, EFL컵, 커뮤니티 실드 우승을 모두 경험하며 팀의 모든 대회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살라의 기록 행진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리버풀 구단 역사상 유럽 클럽 대항전 최다 득점자이자 프리미어리그 통산 득점 10위권에 진입하며 리버풀의 살아있는 전설이 되었습니다. 살라는 또한 리버풀 소속으로 7시즌 연속 20골 이상을 기록하며 티에리 앙리, 해리 케인과 함께 프리미어리그 역대 3명밖에 없는 대기록을 달성했습니다. 2023-24 시즌에도 그는 팀의 에이스로서 변함없는 활약을 펼쳤고, 리버풀의 상징이자 구단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존재로 굳건히 자리 잡았습니다. 30대에 접어든 이후에는 예전과 같은 파괴적인 스피드보다는 동료를 활용하는 연계 플레이와 창의적인 패스 능력으로 플레이 스타일을 진화시키며 축구 지능이 뛰어난 선수로 거듭났습니다.

축구계를 넘어선 영향력과 미래

모하메드 살라가 이집트 국민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단순한 축구선수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그는 이집트의 가난한 시골 마을에서 출발해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된 살아있는 증거이자, 9천만 이집트 국민들에게 불가능은 없다는 희망을 심어준 영웅입니다. 살라가 등장하기 전까지 이집트 축구 국가대표팀은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지 못하는 등 국제무대에서 오랜 기간 부진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살라의 활약에 힘입어 이집트는 2018년 30년 만에 월드컵 본선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루었고, 당시 이집트 국민들의 거리 응원 열기는 전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이집트 대선 투표에서는 무효표에 살라의 이름을 적는 사람들이 많아 '살라'가 100만 표 이상을 얻기도 했습니다. 이집트 정부는 그의 고향에 '모하메드 살라 스포츠 센터'를 건립하는 등 그를 국가 영웅으로 예우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런던 대영박물관에는 그의 축구화가 현대 이집트를 상징하는 유물로 전시되기도 했습니다.

살라는 이슬람권 최고의 스포츠 스타로서 사회적, 문화적 영향력도 막대합니다. 그는 꾸준히 평화와 화합의 메시지를 전하며, 테러 희생자들을 추모하거나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당시 인도적 지원을 촉구하는 등 사회 문제에 목소리를 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습니다. 2018년 영국 스탠퍼드 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살라의 리버풀 이적 이후 영국 내 이슬람 혐오 범죄가 18.9% 감소했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의 성공이 이슬람 문화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확산시키는 데 기여했음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그는 이집트의 마약 근절 공익광고에 출연하는 등 다양한 사회 공헌 활동을 통해 선한 영향력을 펼치고 있습니다. 30대 중반을 향해 가는 살라는 여전히 세계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지만, 그의 미래에 대한 관심 또한 뜨겁습니다. 리버풀과의 계약이 만료된 후, 그가 어떤 선택을 할지에 대해 여러 추측이 오가고 있습니다. 사우디 프로리그 이적설부터 리버풀 잔류, 혹은 새로운 도전에 대한 가능성까지, 그의 다음 행보는 전 세계 축구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가 어떤 길을 걷든, 이미 축구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위대한 선수이자 이집트 국민들에게 영원한 영웅으로 기억될 것이라는 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