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깡패 같은 애인 : 구질한 현실
이 영화의 시작은 로맨스도, 감정도 없다. 오히려 현실의 찌질함과 거친 언어, 그리고 불쾌할 만큼 사실적인 삶의 냄새가 난다. 주인공 세진(정유미)은 전형적인 ‘취준생’이다. 이력서는 수십 통, 면접은 떨어지기 일쑤. 서울에선 생활비도 빠듯하다. 그녀는 “착하게, 성실하게 살면 잘될 거야”라는 막연한 믿음을 품고 있지만, 그 믿음은 하루하루 무너지고 있다. 그리고 그런 세진 앞에 백수 전과자 동철(박중훈)이 등장한다. 작업장에서 알바를 하던 세진은 자신을 감시하는 듯한 거칠고 뻔뻔한 이 남자와 엉겁결에 얽히게 된다. 첫 만남은 최악이다. 동철은 함부로 말하고, 세진은 그런 말에 끌려가지 않으려 애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의 말투와 태도는 가식 없는 삶의 방식처럼 느껴진다. 동철은 세진을 향해 말한다. “너, 그렇게 살면 평생 안 되지.” 무례한 충고지만 세진은 마음 어딘가가 찔린다. 왜냐하면 지금 자신의 현실이 정말 ‘착하게만’ 사는 걸로는 안 되는 상황임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둘은 서로를 밀어내면서도 계속 얽힌다. 그리고 그 연결점은 ‘돈’과 ‘거절당한 현실’이다. 동철은 보증을 잘못 서서 인생이 망가졌고, 세진은 순진한 믿음으로 서울살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이 둘은 어떤 낭만도 없이 연결된다. 그들의 첫 장면은 커피 한 잔도, 설렘도, 웃음도 없다. 그저 각자의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마주 앉은 사람들. 이 영화는 이 시작을 통해 사랑이 운명처럼 시작되지 않아도 어떤 감정은 현실이라는 틈에서 자라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내 깡패 같은 애인’이라는 제목처럼 이 만남은 로맨틱하지 않다. 하지만 현실이라는 무대 위에서 어쩌면 가장 진짜 같은 사랑의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구질한 현실 속에서 그들이 마주한 것은 바로 “지금 이대로는 안 된다”는 삶의 선명한 경고다.
거친 진심
이 작품의 중반은 마치 감정이 맞지 않는 두 개의 톱니바퀴가 서로를 긁어가며 돌아가는 느낌이다. 세진과 동철은 애초에 다르다. 사는 방식도, 말하는 태도도, 심지어 사랑을 대하는 자세조차. 세진은 자기 마음을 숨긴다. 늘 조심스럽고, 어디에도 상처받지 않기 위해 먼저 다가가지 않는다. 반면 동철은 거칠지만 직진형이다. 하고 싶은 말은 하고, 밀어내는 사람에게도 그게 너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대놓고 말한다. 세진은 동철의 태도가 부담스럽다. 그의 무례함, 그의 과거, 그의 직설적인 충고.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점점 그 누구보다 진심을 가지고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이 바로 동철이라는 걸 느끼기 시작한다. 한 장면. 세진은 자신이 실패한 면접을 자책하며 “나 같은 게 뭐가 되겠냐”며 무너진다. 그때 동철은 말한다. “넌 뭐든 될 수 있어. 그냥 네가 널 너무 싸게 파는 거야.” 이 대사는 이 영화의 감정선을 가장 강하게 뒤흔드는 순간 중 하나다. 동철은 말투는 막돼먹었지만, 그 안엔 세상 누구보다 간절한 응원이 담겨 있다. 그는 세진을 사랑한다. 하지만 그 사랑은 장미꽃도, 이벤트도 없다. 그저 ‘지켜주는 말’과 ‘믿어주는 눈빛’으로만 표현된다. 그리고 세진도 자신을 그렇게 바라보는 눈이 처음이라는 걸 깨닫는다.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한 삶 속에서 자신을 제대로 봐주는 사람. 그게 설령 전과자 백수 깡패일지라도. 이 영화는 이 대목에서 로맨틱 코미디의 공식을 비틀며 진심은 거칠게 다가와도 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그들의 관계는 닿지 못할 듯, 늘 엇갈리는 듯하다. 하지만 그 갈등은 관객에게 이렇게 보인다. “이건, 이미 사랑이다.” 세진은 조금씩 동철의 진심을 믿기 시작하고, 동철은 자신의 과거와 맞서며 세진에게만큼은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그런데, 이 영화는 단순히 감정의 교환에 머물지 않는다. 두 사람 모두 서로를 통해 자기 자신을 재정의하고, 더 나은 삶으로 향해 한 걸음 내딛는다. 해당 작품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꽃이 아니라 기억으로 남는 감정을 이야기한다. 이 챕터는 거칠지만 진심인 사랑이 어떻게 사람을 바꾸고 살아가는 방식까지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래도 사랑
해당당 이야기의 마지막은 로맨틱하지 않다. 환하게 웃으며 안기는 재회도 없고, 음악이 고조되는 고백도 없다. 하지만 이 영화는 끝내 사랑을 이야기한다. 그 누구보다도 깊고, 단단하게. 세진은 결국 자기 힘으로 일어선다. 면접에 합격하고, 처음으로 누군가의 도움 없이 자기 이름 석 자로 세상에 당당히 선다. 그 과정에서 동철은 곁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세진을 계속 밀어주고 있었다. 한 장면. 세진은 어느 조그만 방송국에서 현장 리포트를 하고 있다. 그리고 멀리서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는 한 남자의 그림자. 동철이다. 그는 다가가지 않는다. 무슨 말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관객은 안다. 그의 표정, 그 시선, 그 존재 자체가 사랑이라는 것을. 그는 자신의 과거 때문에 세진 앞에 나설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녀를 누구보다 진심으로 응원하고 있다는 걸 숨기지 못한다. 세진도 느낀다. 이 사람이 거칠고, 무례하고, 말을 함부로 해도 자신을 누구보다 정확히 바라보고, 지켜주려 했던 사람이라는 걸. 결국 둘은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잠시 스쳐 간다. 하지만 그 스침은 오랜 시간의 감정보다 더 강한 연결로 남는다. 이 영화는 사랑이 꼭 이뤄져야만 완성되는 게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어떤 감정은, 누군가의 삶을 조금 더 나아지게 만들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는 메시지. 세진은 자기 자신을 더 이상 “착하게만 살아서 실패하는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 그리고 그 변화의 밑바닥에는 동철이라는 사람이 남긴 거칠지만 진심이었던 한 문장이 있다. “넌 싸게 살지 마.” 이 말이 세진의 삶을 바꿨고, 그녀의 감정 깊숙한 곳에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새겨졌다. 이 영화의 스토리는 세련되지 않아도, 서툴고 부족해도 사랑이란 결국 누군가의 삶을 ‘지지하는 감정’이라는 것을 담백하게 말한다. 그리고 우리는 안다. 그들은 어디선가 다시 마주친다 해도 다시 서로를 알아볼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서로의 가장 낮은 곳에서 손을 잡았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는 로맨틱하면서도 코믹한 부분도 일품이지만, 그 외에 사회에 던져주는 메시지도 포함된 게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현재 취준생들의 고민을 정말 잘 담아낸 영화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많은 20대, 30대들이 취업이 되지 않는 것을 본인 탓으로 돌리며 자책하는데 사실 이는 정부에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나라가 잘못한 게 맞다. 최근 25년 집에서 노는 백수들이 정말 많이 있다는 뉴스를 볼 때면 이 영화가 떠오르곤 한다. 10년이 더 된 영화이지만 이 대사를 취준생들이 마음에 새겼으면 좋겠다 " 우리나라 백수들은 그게 다 지탓인줄 알아? 다 정부가 잘못해서 그래.. 당당하게 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