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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라이더: 부서진 침묵, 놓쳐버린 순간들, 끝내 닿지 못한 마음 싱글라이더 : 부서진 침묵이 작품은 대사가 많지 않다. 이병헌이 연기하는 '재훈'이라는 인물은 처음부터 끝까지 침묵 속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그 침묵은 아무것도 없는 공백이 아니다. 말하지 않는 대신, 쌓여 있는 감정의 진폭을 보여주는 무언의 대사다. 그리고 영화는 그 침묵이 부서지는 과정을 따라간다. 재훈은 증권회사 지점장. 서울에서 잘 나가는 커리어를 가진 인물이었다. 하지만 영화는 그가 모든 걸 잃은 순간에서 시작된다. 펀드 사기 사건. 고객에게 권유한 상품이 붕괴되고, 그는 모든 책임을 안은 채 회사에서 사실상 ‘퇴장’당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무너진 건 그가 삶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다는 감정이다. 아내(공효진)와 아들은 호주에 살고 있다. 멀리서 송금하고, 전화하고, 사진으로만 안부를 전.. 2025. 5. 21.
버닝: 보이지 않는 갈증, 퍼져가는 불안, 끝내 꺼지지 않는 불씨 버닝 : 보이지 않는 갈증이 영화는 쉽게 정리되지 않는 감정으로 시작된다. 감정은 있지만 명확하지 않고, 사건은 있지만 설명되지 않는다. 이 영화의 첫 장면에서부터 끝까지 흐르는 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결핍과 알 수 없는 갈증이다. 종수(유아인)는 평범한 청년이다. 지방에서 상경해 생계를 이어가며, 막연하게 소설가를 꿈꾼다. 그의 삶은 멈춰 있다. 목적도 방향도 불분명하다. 그런 그 앞에 해미(전종서)가 나타난다. 과거 동네 친구였던 그녀는 이제 완전히 다른 인물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그녀 역시 겉으론 밝지만, 내면은 복잡한 공허감에 사로잡혀 있다. 영화는 해미의 대사 한 줄로 이 세계의 성격을 제시한다. “작은 굶주림과 큰 굶주림이 있다는 거 알아?” 이 문장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은유다. 작은 굶.. 2025. 5. 21.
7번방의 선물: 부성애의 무게, 억울함의 시간, 끝내 도착한 진심 7번 방의 선물 : 부성애의 무게이 영화는 가장 순수한 사랑이 가장 잔혹한 현실 속에서 무너지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영화가 다루는 건 단지 '누명'이 아니다. 그 누명 뒤에 놓인 부성애의 형태, 그리고 사회가 약자를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용구(류승룡)는 발달장애를 가진 아버지다. 딸 예승을 세상 무엇보다 사랑하고, 작은 우산 하나에도 큰 감사를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하지만 사회는 그의 순수함을 이해하지 못한다. 오히려 그 순수함을 '의심'으로 보고, 그의 다름을 '위험성'으로 간주한다. 이 영화가 특별한 건, 초반의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도 계속해서 어긋나는 시선을 쌓아간다는 점이다. 예승을 향한 용구의 사랑은 말투 하나, 손짓 하나에서 그대로 드러나지만, 세상은 그 표현을 읽어내지 못.. 2025. 5. 21.
명량: 두려움의 전장, 불가능한 전술, 꺾이지 않는 의지 명량 : 두려움의 전장이 영화는 전투 장면 이전에, 두려움이 먼저 침투한 전장을 보여준다. 역사적으로 ‘명량 해전’은 12척의 조선 수군이 330여 척에 달하는 왜군을 상대로 기적 같은 승리를 거둔 전투다. 그러나 영화는 이 승리의 영웅담보다, 그 승리를 이끌기 전까지의 두려움과 절망, 고립의 시간에 더 집중한다. 이순신 장군(최민식 분)은 3도 수군통제사로 복귀하지만, 이미 군은 와해 직전이다. 한산도 대첩 이후 원균의 패전으로 조선 수군은 사기가 무너졌고, 병사들은 도망가고, 수군 장수들조차 싸움을 회피하려 한다. 이순신이 마주한 건, 적이 아닌 아군의 두려움이었다. 영화 초반부는 조선의 내부 상태를 집요하게 묘사한다. 신뢰는 깨졌고, 명령은 무시되며, 심지어 백성들마저 이순신에게 의심과 원망을 보낸.. 2025. 5. 21.
파수꾼: 놓쳐버린 신호, 멈춰버린 시간, 끝내 도달하지 못한 말 파수꾼 : 놓쳐버린 신호이야기는 누군가의 죽음으로부터 시작한다. 그 죽음은 사건이 아니라, 감정의 부재와 단절에서 비롯된 결과다. 이 영화는 흔한 학폭 드라마가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폭력보다도 그 이전의 균열—‘신호를 놓친 순간’—에 집중하는 영화다. 기태(이재훈), 동윤(서준영), 희준(박정민). 이 세 친구는 고등학생이고, 어느 날 갑자기 ‘기우’라는 친구가 스스로 생을 마감한 뒤, 남겨진 이들은 그 사건의 앞뒤를 되짚기 시작한다. 그러나 영화는 시간을 순차적으로 풀지 않는다.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고, 각 인물의 시선에서 단편적인 기억들이 등장하며 하나의 퍼즐처럼 감정의 조각이 맞춰지기 시작한다. 영화 초반부는 모든 게 평범해 보인다. 수업을 듣고, 장난을 치고, 싸우고, 다시 화해하는 10대.. 2025. 5. 21.
아이 캔 스피크: 웃음 뒤의 진심, 꺾이지 않은 용기, 끝내 울리는 말 아이 캔 스피크 : 웃음 뒤의 진심이 영화는 처음부터 유쾌하다. 도시 곳곳의 민원 현장에 등장하는 ‘옥분 할머니’(나문희 분)는 불합리한 관행과 규제에 꼬박꼬박 항의 전화를 걸고, 무엇이든 영어로 말하려 애쓰며 공무원들에게는 ‘골칫덩이’로 통한다. 그러나 관객은 곧 알게 된다. 그 웃음은 단지 코미디가 아니라, 감정을 감추기 위한 일종의 방어기제라는 것을. 영화의 전반부는 전형적인 코믹 설정으로 구성된다. 원칙주의자 공무원 민재(이제훈 분)와 무한 민원 제기자 옥분. 두 사람의 관계는 일방적인 갈등처럼 보이지만, 조금씩 변해가는 과정을 통해 단순한 ‘불만자 vs 공무원’ 구도를 넘어 인간 대 인간의 관계로 확장된다. 옥분은 왜 그렇게 영어를 배우고 싶어 할까? 왜 그렇게 매사에 집요할 정도로 정확함을 요.. 2025. 5.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