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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행: 달리는 공포, 흔들리는 인간성, 끝내 남은 감정 부산행 : 달리는 공포이 영화는 단순한 좀비물이 아니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공포는 피와 살점이 아니라, 닫힌 공간 안에서 점점 좁아지는 생존의 선택지다. 그것은 단순히 육체적인 공포를 넘어서 감정적인 압박과 인간 본성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시작은 평범하다. 펀드매니저 석우(공유)는 딸 수안(김수안)을 데리고 KTX를 탄다. 목적지는 부산. 하지만 기차가 출발하는 그 순간, 뒤에서 열린 하나의 문으로 공포가 뛰어든다. 좀비는 ‘감염자’로 불리며 전통적인 서양 좀비와는 다르게 빠르고, 날렵하며, 극도로 본능적이다. 그리고 이 존재들이 기차라는 ‘움직이는 폐쇄 공간’ 안에 들어오면서 이 작품만의 독자적인 장르 감각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이 영화의 가장 강력한 장치는 공간의 제한성이다. 도망칠 수 없다.. 2025. 5. 24.
실미도: 버려진 임무, 무너진 인간성, 끝내 터진 분노 실미도 : 버려진 임무이 영화는 단 한 줄의 뉴스 기사에서 시작된 영화다. “국가가 만든 부대, 그러나 존재조차 부정된 이들.” 영화는 그 단순한 문장 뒤에 숨어 있던 엄청난 국가폭력과 인간의 비극을 감정적으로 응축한 실화 기반 드라마다. 1968년 1월, 북한 특수부대가 청와대 기습을 시도한 ‘1.21 사태’ 이후, 대한민국 정부는 북파 암살조직을 극비리에 창설한다. 그 이름, 684부대. 이들은 김일성 암살을 목적으로 만들어졌고, 실미도라는 외딴섬에 격리되어 혹독한 훈련을 시작한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그들이 누구였는가 다. 이들은 군인이 아니다. 대부분은 사형수, 무기수, 사회 부적응자, 밑바닥 인생들. 나라가 이들을 불러낸 이유는 ‘쓸모가 있어서’가 아니라, ‘쓸모없이 죽어도 되는 존재’였기 때.. 2025. 5. 24.
족구왕: 비웃음 속 열정, 흔들린 자존감, 끝내 튀어오른 순간 족구왕 : 비웃음 속 열정이 작품은 제목부터 ‘가볍다’. 족구라는 단어에, ‘왕’이라는 유치할 수도 있는 수식. 하지만 영화가 펼쳐내는 건 청춘이 겪는 좌절, 위계, 욕망과 무력함, 그리고 그걸 웃음으로 견디는 진짜 감정의 영화다. 주인공 홍만섭(안재홍)은 사회 복무를 마치고 복학한 대학생이다. 그는 캠퍼스에서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찾으려 애쓴다. 하지만 그가 마주한 대학은 과거와는 다른 공간이다. 후배들은 어색하고, 동기는 사라졌고,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다. 그 와중에 만섭은 족구를 다시 시작한다. 그는 과거 국가대표 상비군 출신. 그러나 지금, 족구를 한다는 건 ‘웃음거리’가 되는 일이다. 학생회는 코웃음 치고, 사람들은 “그게 무슨 운동이냐”라고 한다. 바로 여기서 이 영화는 특별해진다. 이 영.. 2025. 5. 23.
암살: 지워진 이름들, 흔들린 충성, 끝내 남겨진 총성 암살 : 지워진 이름들이 영화는 격렬한 액션영화지만, 그 내면은 지워진 사람들의 이야기다. 총을 들고 싸우는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이면서도, 그들이 잃어버린 이름, 가족, 고향, 정체성을 감정적으로 복원해 가는 서사이기도 하다. 주인공 안옥윤(전지현)은 조선의 독립군이자 저격수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누구인지, 왜 이 싸움을 시작했는지조차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이건 단순한 스파이 영화 속 설정이 아니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이 겪었던 정체성의 공백, 그리고 이름을 잃은 채 살아야 했던 비극을 상징한다. 옥윤은 쌍둥이 언니였던 ‘미남’과의 과거조차 모른다. 그녀는 기억을 잃은 게 아니라, 나라를 잃으며 ‘기억조차 지워진 삶’을 살아야 했다. 그리고 영화는 이 비극을 강한 서사나 설명이 아닌, 침묵과 .. 2025. 5. 23.
내부자들: 욕망의 그림자, 깨진 신뢰, 끝내 드러난 정의 내부자들 : 욕망의 그림자영화는 권력의 가장 밑바닥에서 가장 인간적인 감정을 들춰낸다. 그 시작은 거대하다. 재벌, 언론, 정치, 검찰. 대한민국 권력의 4축이 서로를 견제하는 게 아니라 서로를 이용하며 ‘유착’한다. 영화는 이들이 맞붙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들이 어떻게 손을 잡았는지, 그리고 어떻게 배신하고 무너지는지를 보여주는 감정 구조다. 등장인물은 세 명. 이강희(백윤식) – 보수신문 논설주간, 오형욱(김홍파) – 대기업 회장, 그리고 안상구(이병헌) – 조직폭력배 출신 중개인. 이 셋은 각자 다른 위치에 서 있지만 욕망의 본질은 같다. “이기는 쪽에 붙고, 흔들지 말라.” 영화 초반, 이강희는 안상구에게 그렇게 말한다. 그러나 그 한마디가 이 영화의 핵심을 드러낸다. ‘권력은 충성보다 거래로 작.. 2025. 5. 22.
완벽한 타인: 웃음 뒤 균열, 드러난 민낯, 끝내 남겨진 거리 완벽한 타인 : 웃음 뒤 균열이 작품은 시작부터 친근하다. 오랜 친구들이 저녁 식사를 위해 모인다. 유쾌한 농담, 익숙한 대화, 부부간의 장난스러운 핑퐁. 카메라는 마치 다큐처럼 일상의 한 장면을 따라간다. 그러나 영화는 이 모든 친밀함 위에 차갑고 단단한 질문을 숨겨둔다. “과연 이들은 서로를 알고 있는가?” 테이블에 모인 7명의 친구들. 오랜 시간 알고 지낸 사이,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며 함께 늙어가는 동료들이다. 하지만 이들이 나누는 대화 속엔 ‘관계의 가면’이 감춰져 있다. 정체는 ‘게임’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스마트폰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오는 문자·전화·알림을 모두 공개하자는 단순한 규칙. 그 제안은 처음엔 장난처럼 보인다. “우린 숨길 게 없는 사이잖아.” 하지만 그 말 자체가 이미 .. 2025. 5. 21.